저는 사막 캠프에서 체크아웃을 마치고 페스로 향했을 때만 해도 여유롭게 오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메르주가에서 페스까지는 약 480km 구간을 달리는 데 무려 7시간 30분이 넘게 걸렸고, 도시 경계에 가까워질수록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페스는 모로코에서도 손꼽히는 문화 도시지만, 동시에 운전자에게는 '극악'의 난도를 자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1,200년 역사를 간직한 메디나의 9,000개 골목은 매혹적이지만, 그곳에 닿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했습니다.

페스(Fes)는 어떤 도시인가요? : 9,000개 골목이 숨 쉬는 중세의 박물관 '메디나'
페스는 모로코의 '정신적 수도'이자 찬란한 이슬람 문화의 정수가 집약된 심장부입니다. 단순히 오래된 도시를 넘어 모로코의 역사와 신앙을 지탱하는 깊은 뿌리와도 같은 곳이죠.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거대한 '살아있는 박물관'인 페스는, 한 걸음 내딛는 순간 현대의 속도감을 완전히 잊게 만드는 기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진정한 영혼은 단연 페스 엘 발리(Fes el Bali)라 불리는 메디나(옛 시가지)에 숨어 있습니다. 약 9,000개가 넘는 실핏줄 같은 미로 골목들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데, 놀랍게도 이곳은 전 세계에서 자동차가 다닐 수 없는 가장 거대한 구역으로 꼽힙니다. 자동차의 편리함 대신 천 년 전의 아날로그적 질서가 여전히 도시 전체를 지배하는 독특한 공간입니다.
골목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구리 그릇을 정교하게 두드리는 장인들의 규칙적인 망치 소리가 도시의 심장 박동처럼 끊임없이 울려 퍼집니다. 수공예품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과 세월의 흔적을 목격하다 보면, 내가 서 있는 곳이 2026년인지 아니면 1,200년 전 중세 시대인지 분간하기 힘든 황홀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페스에 발을 들이는 것은 단순히 지도를 따라 걷는 관광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이로운 '타임슬립'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막에서 중세 도시로: 메르주가-페스 구간의 현실 (교통 혼란)
메르주가를 출발해 페스로 향하는 도로는 단순한 이동 구간이 아니라 모로코의 다채로운 풍경을 한 번에 경험하는 여정입니다. 초반에는 지즈 계곡(Ziz Valley)의 오아시스가 펼쳐지고, 중간 지점인 미델트(Midelt)를 지나면 해발 고도가 높아지며 '모로코의 스위스'라 불리는 이프란(Ifrane)의 숲과 유럽풍 건축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막의 열기가 서늘한 산악 공기로 바뀌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렌터카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다만 이 구간은 고속도로가 없고 중간중간 마을과 산맥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소요 시간은 구글 맵 예상보다 훨씬 깁니다. 실제로 저는 오전에 출발했지만 저녁 무렵에야 겨우 페스 외곽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로드트립을 계획하는 분들은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 480km를 이동하는 데 최소 7시간 30분 이상은 잡아야 하며, 중간에 식사나 휴식을 고려하면 8~9시간도 충분히 넘게 걸릴 수 있습니다. 여유롭게 출발 시간을 조정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일정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페스에 가까워질수록 도로 위의 상황은 점점 혼란스러워집니다. 회전교차로(Roundabout)에서는 서로 양보하지 않아 1m를 움직이는 데 몇 분씩 걸리기도 하고, 그 사이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와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오토바이들이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심지어 이렇게 차가 밀리는데 교통경찰은 그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서로 클락션만 울릴 뿐 양보는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퇴근 시간대나 장날에는 도심 전체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합니다. 차선은 사실상 '참고용'에 불과하고, 깜빡이 없이 끼어드는 것은 일상입니다. 좁은 틈만 보이면 오토바이가 거울을 스칠 듯 지나가는데, 이런 상황에서 초보 운전자는 패닉에 빠지기 쉽습니다.
미로 속 보물찾기: 메디나 탐험의 빛과 그림자
차를 안전하게 주차했다면 이제 페스의 진짜 매력을 느낄 차례입니다. 페스 엘 발리(Fes el Bali)라 불리는 메디나는 약 9,000개 이상의 골목이 얽힌 세계 최대 규모의 '차 없는 구역'입니다.
메디나 내부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슈아라 가죽 무두질 공장(Chouara Tannery)입니다. 형형색색의 염색 통에서 가죽을 물들이는 광경은 압도적이지만, 지독한 냄새는 각오해야 합니다. 입구에서 주는 민트 잎을 코에 대고 구경하는 것이 페스 여행자들의 필수 생존 전략입니다.
메디나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함께 여행한 일행도 저녁에 나갔다가 길을 찾지 못해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구글 맵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길을 찾을 수 있고,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여유를 즐기며 산책하듯 다닐 만합니다.

주요 볼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 부 이나니아 마드라사(Bou Inania Madrasa) : 14세기 이슬람 학교로, 정교한 조각과 타일 장식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 밥 부즐루드(Bab Boujloud) : 푸른 타일로 장식된 '블루 게이트'로, 메디나의 메인 출입구 역할을 합니다
- 왕궁 정문(Dar al-Makhzen) : 내부 출입은 불가하지만, 황금빛 7개 문 앞에서의 인증샷은 페스 여행 필수 코스입니다
저는 메디나 초입에 위치한 숙소를 예약했는데, 그곳까지는 차량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차가 쉽지 않았습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거주자나 여행객들의 차량이 길 옆에 빼곡히 주차되어 있어, 다른 차와 스치듯 지나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폭이 너무 좁아 조금만 방심하면 긁힐 수 있는 위험천만한 구조였는데요. 주변에 유로주차장이 있다면 마음 편하게 돈을 지불하시고 주차하시길 바랍니다. 단, 외국인이라고 말도 안되는 가격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체크인후에 호텔직원에게 물어보고 다시 주차장으로 가서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했습니다. 짐이 많다면 캐리어를 끌고 복잡한 메디나내부를 돌아다니는 것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페스는 분명 매혹적인 도시입니다. 1,200년 역사를 간직한 메디나를 걷는 것만으로도 중세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운전자로서 겪어야 하는 교통 혼란과 주차 문제는 여행의 낭만을 순식간에 날려버릴 만큼 현실적이고 까다롭습니다. 페스를 방문할 계획이라면 충분한 시간 여유와 사전 정보 확인, 그리고 무엇보다 인내심을 갖추고 떠나시길 권합니다. 미로 같은 골목을 헤매다 마주한 예상치 못한 풍경 하나가, 그 모든 고생을 보상해줄 것입니다